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대구 국채보상운동
안녕하세요, 여니입니다.
이번에는 대구 국채보상운동 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시대 경제침탈을 위해 강제로 들여온 차관 1천 300만원을 갚기위해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개된 주권수호 민족운동입니다.
1094년 고문정치 이래 일본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해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고 통감부는 이 차관을 경찰기구 확장 등 일제침략을 위한 투자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한 시설 확충에 사용하였습니다.
1907년 한국정부의 외채가 1300만원이나 되었고 당시 한국정부의 세입액에 비해 세출부족액이 77만원 정도나 되는 적자예산으로 외채상환은 불가능한 상황이였습니다.
1907년 2월 대구 광문사의 명칭을 대동광문회라 개칭하는 특별회에서 회원인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의, 참석자 전원의 찬성으로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하여 발표함으로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 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명이고 5월까지의 보상금액은 230만원 이상이였습니다.
특히 국채보상운동은 많은 부녀층이 참여하여 각종 페물을 의연소에 보내고 노동자,인력거꾼,기생 등 하층민들까지도 적극참여하여 범국민적인 운동이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운동주체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1908년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일제의 탄압에 의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지만 국권 회복을 위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범국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의의가 있습니다.
10월 말에 대구 국채보상운동 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최종심사가 있었고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조선통신사 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에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총 2470점의 수기기록물,일본정부기록물, 당시 실황을 전한 언론기록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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